_/읽다가

럭키 경성

hkwu 2010. 3. 18. 03:00

 

2007.07.30. 초판 5쇄로 읽음.

 

표지에 써 있는 붉은 글씨가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열 사람의 인생을 소개하는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을 대체로 노름꾼과 자산가, 둘로 나누겠다 싶어서

이런 안 어울리는 조합을 엮다니ㅋㅋㅋ 하는 마음에 잡았다.

 

소개된 인물 대부분이 그리 존경받을 만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2부의 인물들 중 떳떳하게 그 재산을 일군 사람은 몇이나 될까에 생각이 미치면--;

 

매점매석, 투기, 경경유착에 비리 천지.

그래놓고 예쁘게 포장하면서 더불어 사회적 명성에다 절세 효과, 손쉬운 상속까지 누리기 위해서

각종 재단이 난립하고 있는 이놈의 세상.

외할머니가 어떤 사람을 두고 늘 그러신다. 그이가 식구가 어디 있어서 자기 욕심을 내겠냐, 다 나라 위한 거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 그 재단은 그러면 뭘까요, 하는 말이 혀 끝까지 올라와서 참는 게 참 힘들다고.

 

너무 역사 쪽 책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요새 자꾸 든다. 조선말고 다른 시대로 좀 바꾸고, 실용서를 좀 봐야겠다. 아오.

 

 

 

<1부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소동>

 

아시아 전역을 시끄럽게 만든 청진-웅기-나진의 토지 투기, 선물 쌀 거래로 대박과 쪽박을 오간 미두왕 반복창,

금광에 정어리에 손댔던 중외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의 김기진-김복진 형제,(매일신보는 일제 어용 신문이었음;;)

대한증권거래소의 전신 조선증권취인소 시절 대박맞고 손 털어 성공한 당진 총각,

경찰 고위직까지 포기하고 기생 월향을 택한 순정의 유영섭(처자식있던 몸 주제에;)의 적당한 때 미두시장에서 빼기,

주식 대박으로 부자가 되어 주단포목 매점하고도 불기소로 풀려나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효시가 된 사보이호텔의 조준호,

공금으로 노름하다 결국 전문노름꾼으로 변신해 증권회사까지 차렸지만 투자방식을 못 바꿔 망하고 만 김귀현이 나온다.

1부 요점은 '도박은 적당히 벌었을 때 손을 떼야 성공'이라는 거ㅡㅡ^ 손모가지 발모가지 다 잘라도 못 고친다는데.. 에휴.

사람이 만든 것 중에 젤 나쁜 몇 가지가 전쟁, 노름, 술, 담배라고...!

 

 

<2부 근대 조선을 들썩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금광왕 이종만, 유기장수 이승훈, 평양 백 과부, 경북의 최송설당을 다루는 2부.

 

이종만은 미역상, 어업, 대흥학교 설립, 중석 채굴, 경성고학당 설립, 함남 평야 개척, 함남 개간 금광 동업 등

30년간 28번 실패하지만 결국 금광으로 돈을 벌어, 대동농촌사를 설립해 아름답고 화끈하게 돈을 썼다.

개인 소작료를 3할만 받다가 30년 후 소유권을 넘겨주겠다는 전무후무한 발상.!

하지만 결국 돈 안되는 사업만 크게 벌이다보니 망해버렸다. 아깝다.

실패와 실패의 와중에도 이재민 구호하러 전국을 돌고,

돌아서면 학교 세우고 있고,(평양 숭실전문학교 인수 무산 직후 세운 대동공업전문학교는 현재의 김책공업대학)

젊을 때도 농촌회사 만드려더니 성공하자마자 결국 세우고 이런 걸 보면

이 분 경우엔 뭔가 진심이란 느낌이 든다.

분단 후 김일성의 초대(?)로 월북해서도 자원 개발 등의 사업을 했(으나 실패한 걸로 보인)다고 하는데,

식구들 두고 홀로 북한에 남았던 건 북한이 '노동자의 나라'를 표방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릴 때 같았으면 이종만이라는 사람이 있었는 지도 몰랐을텐데 이렇게 책에 실을 수 있게 된 게 새삼 신기하다.ㅎ

그러나 이 분의 얘기를 보며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밖에서 좋은 사람'이랑 사는 식구들은 죽어난다는 거.

내 식구들 추위에 떨고 배고프게 해서 사회사업하는 사람이 남편, 아버지라면...--;

 

남강 이승훈(본명 인환, 아명 승일, 커서는 승훈. 이름 참 많네;)은 잡일꾼, 보부상, 유기점, 무역상 등의 일로 벌어서

양반이 되고 싶다던 꿈을 수릉 참봉 벼슬을 사는 걸로 이룬 후 학교 운영에 전력을 쏟은 인물. 어린이대공원에 동상도 있다.

유기점 차렸을 때 얘기가 참 좋은 것이,

쾌적하고 깨끗한 공장에서 다른 곳의 2배 임금을 주고 휴식 시간을 보장하여 노동조건을 개선했더니

이 공장은 같은 규모의 다른 곳에 비해 1.5 ~ 2배의 생산성을 보였더라는 거.

하지만 이후 무역상 시절에는 매점매석을 일삼아 돈을 벌고, (망하기도 많이 망했고)

지역간 화폐 가치 차이를 이용해서 재산 불리려다 일본 배 때문에 침몰하니까

원금 만냥이 아닌 2만냥(부산 도착했으면 이 금액이었다며)을 일제에 청구해서 결국 원금을 돌려받는데 성공함.ㅋ

 

평양의 백선행 기념관을 세운 백 과부는 일해서 번 돈을 아끼고 아껴 땅을 사고 불려 모은 재산을

환갑잔치 100번은 할 돈으로 다리를 세우고(백선교),

광성보통학교, 숭현여학교, 창덕보통학교, 숭인상업학교 등 기독계 학교에 계속해서 기부하고,

각종 사회 기부로 전 재산을 쓰고 가려고 작정했던 분.

양아들에게 남겨준 건 기부액의 1/30도 안되는 금액의 땅 조각 조각이었다고 한다.

재산 빼돌리고 돈지랄하고 노름과 오입질에 빠진 전형적인 부자 2세였던 그 양자 왜 파양 안했나 모르겠다.

암튼. 모으는 과정에서 돈놀이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 참 좋게 보였다. 아끼고 아껴서 행복하게 돈을 쓴 대단한 할머니.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걸 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돈은 모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이런 위대한 진실..

거간꾼에게 속아서 비싸게 산 땅을 일제에 완전 비싸게 팔아넘긴 얘기도 좋았고ㅋㅋㅋㅋ

(그래봐야 그 돈이 결국 우리 조상들 피땀이라서 그렇지만 그래도~)

 

위의 백 할머니와 비등한 기부액으로 김천고등학교를 세워 아이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준 고부댁 송설당 최 할머니.

(1930년 즈음의 32만원, 30만원은 지금 320억, 300억이라는....ㄷㄷ)

돈으로 귀비 엄씨에게 줄을 대어 영친왕 이은의 보모가 되고, 동학민란 진압 실패와 가담으로 멸문된 가문 신원하고, 식구들 벼슬 내주고, 재산 불리고, 남편의 탐관오리 짓으로 또 불리고...

뒤에 제대로 '비워'냈기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존경받는 건 당연하지만,

고종과 엄귀비 부분 읽으면서는 짜증이 좀 많이 났다.

요새 읽는 책마다 고종 일가의 대단하신 전횡이 자꾸 보인단 말이야...

나라 망해가는데 왕실 돈으로 빚내서 호의호식하다 외국으로 도망간 애비 생활비 대주는 황후,

뇌물받고 벼슬 내리고 뇌물받고 답장으로 돈 내주는 후궁, 그걸 '승인'해주는 고종. 자------알 한다.

몇 몇 사람들 보면 대체 무슨 용기로 왕가의 후손입네, 노론 정승 후손입네 내세우고 다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니까.

 

<3부 근대 조선의 별난 부자 별난 사건>

뭐 그닥 할 말 없는 인물들. 이용익과 이하영을 다루고 있다. 혈압 올리기 딱 좋은 말종들 대거 등장.

러시아가 더 좋아서 한일의정서에 끝까지 반대했는데 이게 잘 포장되면 민족의 영웅으로 소개되곤 하는 이용익,

돈과 권력의 귀신 송병준,

갑신정변 덕에 칼 맞은 민영익(명성황후 조카) 구해주고 개신교 뿌리내리게 하는 데 성공한 선교사 알렌의

요리사로 출발해 미국 대사까지 지내고 친일 및 친미 활동으로 우뚝 선 이하영.

(이 사람 참 재주도 좋지. 딱 여섯번째로 찬성해서 을사5적에는 안 들어갔단 말씀.

 근데 그 손자는 독재자 이승만에 맞서다 짤려버린 육군참모총장 이종찬씨.)

 

 

「동아일보」는 1937년 9월 17일자 사설에서 "이런 갸륵한 독지가의 토지가 불행히 157만평에 '불과'하여 그 수혜 소작인이 겨우 연천, 평강, 영흥 3군의 153호에 그치는 것은 매우 섭섭한 일"이라고 극찬했다.

 - 154쪽, 이종만 편.

 

(전략) 문 상궁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엄 상궁은 크게 기뻐하며 고종께 고부댁의 꿈 이야기와 출산 용품을 바치려 한다는 고부댁의 갸륵한 뜻을 전했다. 고종 역시 기뻐하며 고부댁이 바치려는 출산 용품을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윤허했다.

 - 258쪽, 최송설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