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보다가

폭풍의 언덕

hkwu 2016. 4. 17. 19:06

로렌스 올리비에가 히스클리프 역인 1930년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랑 음악 분위기 비슷하고,

캐서린 역 배우 되게 앙칼지고 영리하게 생긴 것도

비비안 리랑 비슷한 느낌이다.

찾아보니까 영화보다 뒤에 찍은 사진 나오던데

영화찍을 때 얼굴이 좀 덜 고양이 느낌이라 그런지

이 때가 더 고와보였다. 이러나 저러나 예쁘신 건 변함없지만.


열 두살인가, 너무 어릴 때 이 책을 읽어서

쟤네가 하나도 이해가 안되고

전체적으로 너무 음침하다보니 안 좋아하는 책인데

나이를 먹고 영화로 보니까 다르긴 다르구나. 캐서린의 이유는 알겠다.

여전히 캐서린이 철딱서니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워더링 하이츠에 눈보라를 뚫고 소작인이 찾아오고

이 사람이 자고 가는데 밤에 히스클리프를 찾는 캐서린의 유령을 봄.

이에 노년의 히스클리프가 괴로워하고,

할머니가 된 엘렌이 방문객에게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


언쇼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히스클리프를 데려왔지만

아들 힌들리가 그를 마부로 만들고 부려먹고 괴롭힌다.

그래도 히스클리프는 힌들리 몰래 캐시를 보기 위해 거기서 버팀.

(페닌스톤 바위가 둘이 어릴 때 놀던 곳.)


부자집 아들인 에드가 린톤이 청혼하자 달려와서

입주 가사도우미 엘렌에게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유리창 깨느라 손 다쳐서

엘렌이 치료해주려던 참에 캐시가 달려들어온 거라

히스클리프가 듣고 있는 상황.

엘렌이 마음 아파하면서 아가씨가 그 분을 좋아하는 게 춤이랑 그런 거냐고 물으니

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히스클리프에 대한 사랑을 깨닫지만 한 발 늦어서

이때 듣고 있던 히스클리프가 말을 훔쳐서 떠남.

히스클리프가 떠난 걸 알고 괴로워하는 캐서린을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은 예전에 그랬듯이 또 금방 돌아올 거라고 별로 걱정 안하는데

캐서린만은 이것이 끝이라는 걸 알고 비바람을 헤치고 찾으러 바위로 가는 것.


엘린과 얘기할 때 캐서린 대사가 유명한데,

[엘렌, 내가 히스클리프예요.

 그가 고통받을 때 나도 고통받고 그가 느끼는 아무리 작은 행복도 느껴요.

 세상이 사라져도 히스클리만 있다면 난 살아있을 거예요.]

라는 거. 사람 말은 끝까지 듣는 거라니까 히스클리프야..



윌리엄 와일드랑 동시대를 살지 않아서 아쉽지는 않다.

그때 우리 나라는 왜놈들한테 침탈당한 때고 지금 내가 볼 수 있는 게 있으니까.

그런데 그 때 다른 나라에서는 이렇게  오래 남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슬퍼진다.


막장이지만(둘이 각각 남매랑 애정없이 혼사를 치르니)

그래도 늘어질 틈이 없고

소설보다는 덜 음침한 느낌이라서 좋다.


초반에 둘이 껴안을 때 엄청 거세게 안아서, 옛날 영화 느낌이 좀 더 난 것 같다.

근데 내가 시대극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차 마실 때랑 춤 출 때인데

이 영화에 차 마시는 장면은 없고, 무도회는 두 번인가 나오지만 왤케 향기없는 꽃처럼 느껴질까.


캐서린의 시누인 이사벨라는 참 착하고 곱지만 바보다ㅠ 남매가 둘 다ㅠ

캐서린은 적어도 시작이 깊은 애정은 아니었어도 식 올리고 다정하게 잘 지냈는데

이사벨라는 저렇게 돼서 어쩐담ㅠㅠ

누가 그 남자에 대해서 너랑 다투게 되면 그건 좋은 남자가 아니라서 그런 거라고ㅠㅠ


캐서린 역 배우는 1911년생 Merle Oberon.

성까지 완벽하게 배우느낌이다.

이 화질로 이제 보는데도 어쩜 저렇게 눈이 반짝반짝하는지!

눈물 고인 장면마다 눈만 보인다.